부부사이에 건강한 사랑, 연인들 사이에 건강한 사랑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대답은 역시 정신분석학에서 찾을 수 있다. 영국의 대상관계 이론가인 정신분석학자 컨츄립(Guntrip)은 건강한 사랑을 너를 잃지 않고 자치심을 유지할 수 있고 나를 잃지 않고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를 했다(Martha Stark, 1999). 즉 분리, 독립을 하면서도 대상으로부터 거리감을 느끼지 않으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 하면서도 자유로움을 잃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사람들은 흔히 결혼을 하게 되면 자유를 잃게 된다고 말한다. 결혼은 구속이라고 말을 한다. 독신주의자들은 결혼을 자유의 상실이라고 말한다. 결혼을 하게 되면 상대 파트너에게 질식 당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내 자유를 잃게 된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정신분석적 용어를 사용하면 상대에게 잡아 먹힌다고 표현된다. 그러나 정작 결혼을 하게 되면 한층 더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 대상관계 이론가들의 사랑에 대한 정의이다.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더 자유롭게 되어야 그것이 건강한 사랑이요, 참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발달의 단계를 알아야 한다.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어린시절의 부모와의 관계에서 습득되어진다는 것이 정신분석 학자들의 일반적인 관점이다. 사랑의 능력은 저절로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르시즘 환자들은 사랑을 할 능력이 없다(김종만 저 433페이지 참조). 어린시절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문제가 많은 사람일수록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결함이 생긴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드는 건강한 사람의 조건을 사랑할 수 있고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를 했다. 이 정의는 지금까지 건강한 사람에 대한 정의로는 최상의 정의로 평가 받고 있다(Saul, 1971)(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린시절에 배양되어지는 것일까? 정신분석 학자이자 관계 이론가인 에릭슨(Erikson)은 에고(ego) 심리학자로 유명하다. 스승인 프로이드 밑에서 공부를 했으나 본능이 강조되는 프로이드의 섹스심리학(psychosexual)에서 섹스 보다는 양육 환경이 강조되는 사회성의 중요함을 주장하여 정신분석학의 핵심이 이드(Id)를 분석하는 이드 심리학에서 자아(ego)를 분석하는 자아 심리학으로 물줄기를 바꾼 대표적인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정신분석 이론을 심리사회적(psycho-social) 이론으로 확대 발전 시킨 사람이다. 어린시절에 가족 환경의 중요성 즉 가족 구성원들과의 관계와 동료, 친구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한 이론가로 고등학교 졸업장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종신 교수로 재직한 사람이다(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에릭슨은 대인관계의 핵심을 믿음으로 보았다. 대상에 대한 신뢰감이 인간관계의 기본 핵으로 보았다. 인간 관계의 핵심을 믿음으로 보는 관점은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왕도 정치의 3요소로 믿음(信)과 음식(食)과 국방(兵)을 들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써 믿음을 들었다. 백성이 정부의 하는 일을 믿지 않으면 질서가 서지 않음을 그 이유로 들었다. 현대 사회에서 신용카드가 바로 믿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은행은 그 사람의 신용을 담보로 돈을 빌려 주는 것이 아닌가? 중년 부부들의 이혼의 80%가 배우자의 부정 때문으로 보고되고 있다(Pittman, 1989). 부부가 서로 한 평생은 함께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서로간에 믿음 때문이다. 이 믿음이 깨어진 것이 외도이다. 중년 부부들의 이혼은 결혼 초기의 이혼 다음으로 높다. 상대 배우자에 대한 믿음이 해손 되었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어떻게 마음 속에서 형성 되는가?를 이해하려고 에릭슨의 발달 이론을 알아야 한다(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에릭슨의 1단계인 믿음(trust) 대(vs) 불신과 자치심(autonomy) 대(vs) 의심(doubt), 수치심(shame)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은 홈페이지인 정신분석 치료에 들어가서 에릭슨의 믿음 대 불신에 들어가 보세요.

믿음의 첫 시작은 엄마의 젖가슴에서 시작된다. 엄마의 젖가슴에서 아기는 점차로 엄마의 무릎으로 내려 오면서 아기는 엄마로부터 떨어져서 환경 탐색 활동을 하게 된다. 옆에 엄마가 있으면 아기는 환경 탐색을 활발하게 한다. 환경 탐색을 하면서 아기는 엄마가 옆이 있는가? 를 확인한다. 엄마가 옆에 있어서 용기를 붓 돋아주면 아기는 엄마를 잊고 환경 탐색에 몰두 한다. 아기가 언제든지 엄마를 부르면 엄마가 언제든지 아기에게 나타난다고 믿게 되면 아기는 엄마를 신뢰하게 된다. 엄마는 언제나 내가 요구하면 즉시 내 앞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 머리 속에 인식이 된 것이다. 아기가 방안의 탐색에서 방 밖으로 마당으로 환경의 범위가 확대 되면서 아기는 항상 엄마가 옆에 있나를 체크 하게 된다. 엄마에 대한 믿음이 확실 할수록 아기는 혼자서 잘 놀게 된다. 즉 믿음이 높을수록 혼자 있어도 불안해 하지 않고 환경 탐색 활동을 잘 한다는 점이다. 믿음이 자치심을 확대 시킨다. 자치심은 혼자서도 불안해 하지 않고 스스로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엄마가 언제나 내 옆에 있다는 확신 때문에 스스로 혼자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치심과 독립심은 에릭슨의 발달의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즉 1세 3세에 해당 된다. 믿음이 많으면 자치심이 강해진다(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어른이 되어서 연인 관계나 부부 관계에서 배우자에 대한 믿음은 어린시절에 엄마의 품에서 배운 믿음이 그 바탕이 된다. 배우자에 대한 믿음이 많으면 많을수록 배우자를 자유롭게 활동하게 해 준다. 배우자가 옆에 없어도 불안하지 않고 혼자서 사회활동에 열심이 종사할 수 있다. 배우자를 믿기 때문에 배우자를 놓아줄 수가 있다. 파트너는 배우자의 구속, 속박에서 자유로워질 수가 있게 된다. 반대로 엄마가 항상 옆에 있어주지 못하면 아기는 환경 탐색을 중지하고 엄마에게 매달리려고 한다. 엄마를 놓치면 엄마는 영영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엄마를 놓아주지 않으려고 한다. 3세 이후에 아기는 엄마가 옆에 없어도 다시 엄마가 되돌아 온다는 사물에 대한 영속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엄마는 사라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고로 엄마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려고 한다. 환경 탐색은 뒷전이 되고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가 아기에게 불신을 심어준 것이다. 엄마가 언제나 아기 옆에 있겠다고 약속을 해 놓고 엄마를 찾을 때는 엄마는 항상 옆에 없었다. 고로 엄마는 아기에게 거짓말을 했고 아기는 더 이상 엄마를 믿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내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어린시절에 엄마로부터 불신을 심었기 때문이다. 불신이 많은 사람이 성장해서 결혼하게 되면 배우자를 믿지 못한다. 배우자를 불신하게 되면 파트너는 부자연스럽게 된다. 배우자는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상대가 자신을 의심하게 되면 행동은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배우자는 자연히 상대에게 구속을 당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자유롭지 못하고 질식됨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누구든지 구속을 받으면 탈출하려고 한다. 가장 심한 경우에는 부인을 믿지 못하고 부인의 행동을 일일이 감시하는 의처증이나 남편의 행동을 일일이 체크 하는 의부증이 된다(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사례. 영화 적과의 동침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로라의 남편은 의처증 증세를 보인다. 로라의 남편인 마틴은 증권회사의 이사로 있는 돈 많은 하이트 칼라로 해변가에 고급 저택을 가지고 있다. 로라는 해변가를 산책하다가 이웃 집에 사는 정신과 의사와 인사를 몇 마디 한 것을 남편이 보고 그 남자와 어떤 관계이냐고 무자비한 구타를 당한다. 지나가는 이성을 처다 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의심을 받고 실토를 하라고 폭행을 당하기 일수다. 로라는 늘 집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남편은 부인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인을 폭행한 뒤에 섹스를 가지고 부인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사 입히고 섹스를 가진다. 부인을 물건 취급을 하는데 싫증이 난 로라는 탈출을 준비하고 몰래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다. 요트 놀이를 하다가 폭풍을 만나자 로라는 물에 빠진 것을 가장하여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로라는 다른 고장으로 이사를 가서 이름을 사라로 바꾸고 벤이라는 연극 전공 교수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과거의 악몽에서 조금씩 벗어나서 즐거운 삶으로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여기에서도 마틴의 병적인 집착에서 오는 편집증 사랑이 로라를 질식하게 만들었고 벤의 참 사랑에 의해서 로라는 정상인으로 회복되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랑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랑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음을 볼 수 있다. 부인이 물에 빠져 죽은 줄 알고 장례식까지 성대하게 치르고 슬퍼했던 남편은 어느날 부인의 친구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로 부인이 몰래 수영을 배웠고 변기통에 버린 반지를 찾아내고 부인이 탈출한 것을 알게 된다. 끝내 부인을 추적하여 부인을 자신의 소유를 만들려고 시도 하다가 끝내 부인의 총에 숨을 거둔다. 남편은 우리는 영원이 하나, 당신 없이는 살 수가 없어, 아무도 우리를 떼어 놓지 못해 등의 표현을 통해서 자신의 열렬한 사랑을 부인에게 전해서 부인을 회유하려고 하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적과 동침을 상세하고 알고 싶은 분은 영화 속에 주인공의 심리분석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적과 동침에 들어가 보세요.

연인 관계나 부부 관계는 서로의 믿음에서 시작해서 참 사랑으로 가꾸어야 한다. 남편은 부인을 믿고 부인을 자유스럽게 해 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부부들은 결혼의 시작과 함께 배우자의 결혼 전 이성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을 것을 강요한다. 결혼과 동시에 배우자의 취미 생활을 단절하고 남편이나 부인이 좋아하는 취미에다 서로 맞출 것을 강요하는 것은 갈등을 불러 일으키게 되는 전주곡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부인과 남편이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었으니 부인과 남편이 생각이나 행동의 하나됨을 강조한다. 그러나 일심동체는 부인과 남편이 한 집에서 한 솥 밥을 먹는 것을 의미하지 생각이나 행동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잘못된 생각이 잘못된 행동으로 발전한다. 서로 완전히 다른 집안에서 자란 남편과 부인이 결혼을 했다고 해서 생각과 행동이 똑 같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갈등을 예고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부부 관계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배우자의 취미를 인정해 주고, 배우자의 개인적 프라이버시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부부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일일이 서로 밝히라고 하는 것은 배우자의 개인적 자유를 박탈하는 것과 같다. 좋지 않는 이벤트는 서로 나누어야 한다. 사소한 조그만 것들을 일일이 다 말하게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큰 이벤트는 서로 나누어야 한다. 배우자는 서로 존경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서로 조정을 해야 한다. 상대를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은 파트너를 믿는 것에서 출발한다. 서로의 취미 생활이나 사회활동은 서로의 의사를 존중해서 결정되어야 하고 배우자의 활동을 간섭하고 일치시키려고 하는 것은 갈등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배우자나 연인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배우자에게 매달린다. 밀착이 사랑이라고 오인하게 된다. 매달리면 상대는 부자연스럽게 되고 결국 질식됨을 느끼게 된다. 믿지 못하기 대문에 매달리는 것이다. 불신이 의심으로 연결되어 배우자를 믿을 수 없으니까 항상 감시하게 되고, 혼자 놓아두지 못하고 일일이 간섭을 하게 되고 체크를 하게 된다(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녀노소(男女老少) 할 것 없이 즐겨 읊고 있는 김소월의 시 진달래 꽃은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을 노래한 시로 유명하다. 시인 박시교(1986)는 소월(素月) 만큼 인구에 회자되는 시인은 일찍이 없을 것이다. 한국 사람이면 소월의 시 한 편쯤은 외어야 하고 진달래 꽃, 산유화, 먼 후일 엄마야 누나야 초혼 등의 작품들—”에서 소월 시를 민요적 율조를 담은 민중시로 평가하고 있다(글방 문고, 작품 해설, 1986)(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 약산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은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글방 문고, 011호, 진달래 꽃에서 인용)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보기 싫어해서 떠나가는데 왜 붙잡지 않고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린다고 할까? 진달래 꽃을 뿌려드려서 그 꽃을 밟고 가게 할까?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하였을까? 누구나 한번쯤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것은 역설적 기법으로 배웠다. 우리 조상들은 보고 싶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은근하게 정든 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으로 표현한 것을 예로 들어서 말로써 직접 표현하지 않고 역설적으로 강하게 표현한 것으로 해석해 오고 있다.

문학 평론가인 이어령은 소월의 진달래 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이 시는 이별가로 가르쳐 왔다. 그러나 이 시의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의 시제는 모두 미래형이다. 화자는 가정적 체험을 통해 이별의 슬픔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고한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의 이중적이고 아이러닉한 의미를 파악하게 되면 사물의 의미나 느낌을 흑백으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시의 공화국에서 흑백 사이의 회색은 기회주의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삶의 체험을 깊게 하는 이상향이다. 반대의 일치, 아이러니 시적 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소월의 시 읽기는 흑백논리의 가시철망을 끊고 무한한 상상의 벌판으로 나가도록 하는 강철 가위였다. 소월의 시에서 보여주는 반대의 일치, 즉 극한의 부정을 통해 긍정을 이끌어내는 역설을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약의 이름에 빗대 햄록효과로 부르고자 한다, ---이하 중략(이어령의 은퇴 강연, 중앙일보 2001년 9월 8일)에서 지고지순한 사랑과 역설적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표현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김소월의 시는 역설적인 기법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그대로 해석을 하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해석이 된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은 언제든지 기꺼이 편안하게 보내드리겠다. 나보다도 다른 사람한데서 더 행복해진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기꺼이 양보하겠다는 생각이야 말로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다고 해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오히려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사랑이야말로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감수할 용의가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사랑은 구속과 속박이 아니고 자유로움과 편안함에서 시작되는 즐거움 이다는 것이 이 시에 베어 있다고 하겠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싫어할 때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보내 줄 수 있다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시다(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진실된 사랑 즉 참 사랑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나온 것이 1960년대로 사랑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김소월이 이 시를 쓴 시기가 1920년대로써 이미 사랑의 핵심을 꿰뚫어 본 것이 40년이나 앞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34년에 자살한(박시교, 1986, 글방 문고. 작품해설) 천재 시인은 이미 사랑의 본질을 알고 있었고 우리가 지금까지 역설적으로 해석한 시점에서 본다면 80년을 앞서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소월의 시는 역설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랑, 참사랑의 의미로 해석되어져야 한다.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면 쉽게 풀린다(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레바논 태생으로 기독교 시인이자 철학자인 칼힐 지브란은 결혼이라는 시에서 부부 사이의 참 사랑을 명쾌하게 표현하고 있다(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그대들 포도주를 마시되 한 잔에서 마시지 말지어다

사랑의 축배를 들 되 각자의 잔에서 마실지어다

기타의 두 줄도 떨어져 있어야 아름다운 소리가 나고

잣나무와 가문비 나무 두 그루도

서로의 그늘에서 자랄 수 없는 법

그대들은 하나지만

두 사람 사이에 햇볕과 바람이 항상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라.